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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치하 러시아의 ‘안정’이 지닌 위험

카페블루 2025. 5. 1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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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치하 러시아의 ‘안정’이 지닌 위험
The perils of Russian stability under Putin

2025년 5월 13일
스티븐 G. F. 홀(Stephen G. F. Hall)
주제: 지정학(Geopolitics), 러시아(Russia)

 

유럽은 너무 오랫동안 러시아의 불안정성(Russian instability)을 두려워해 왔다.

이제는 푸틴 정권의 ‘안정성(stability)’이 초래할 결과를 두려워해야 할 때이다.

 

https://engelsbergideas.com/notebook/the-perils-of-russian-stability-under-putin/

블라디미르 푸틴.
사진 출처: ZUMA Press, Inc. / Alamy Stock Photo

 

1930년대,

국제 질서가 붕괴되고 권위주의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당시, 민주주의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주저했다.

히틀러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보여준 침략의 증거가 명확해졌음에도, 그들은 대결보다 신중함을 선택했다.

당시 유화 정책(appeasement)은 또 다른 대전 발발에 대한 두려움과, 수정주의 세력(revisionist powers)을 양보로 만족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했으나, 이는 치명적인 오산이었다.

 

유럽이 그 위협의 진정한 본질을 인식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불길에 휩싸인 후였다.

이 쓰라린 경험은 하나의 강력한 교훈을 남겼다.

팽창주의 정권(expansionist regimes)을 방치하는 것은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오히려 재앙을 초래한다.

 

거의 한 세기 후,

유럽은 다시 한 번 전략적 중대 기로에 서 있다.

푸틴의 정권은, 단순히 국경을 방어하려는 예측 가능한 행위자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수정주의적인(regressionist) 성격을 지닌 정권임을 드러냈다.

이 정권은 무력을 통해 국제 경계를 다시 그었고, 서방 정치에 혼란을 야기했으며, 에너지에서 정보까지 모든 것을 무기화했고, 유럽 전역에서 파괴 공작을 벌여왔다.

 

서방은 너무 오랫동안 억지(deterrence)와 경제 제재(sanctions)만으로 크렘린을 ‘봉쇄(contain)’하려 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는 단순한 봉쇄만으로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세기 유럽이 배운 바와 같이, 위협에 대해 벽만 쌓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결국 그 근원을 직접 직면해야만 한다.

 

그 위협은 러시아라는 국가 자체가 아니라, 푸틴 정권의 구체적인 특성에 있다.

이 정권은 억압(repression), 도적 정치(kleptocracy), 제국 향수(imperial nostalgia)를 기반으로 하며, 외부 침략과 불가분의 정치 질서를 구성해왔다.

 

그 정당성은 ‘러시아의 글로벌 부흥(global resurgence)’이라는 신화에 근거하며, 러시아는 세계 강대국들(미국과 중국 등)과 대등한 영향력과 국제 질서에 대한 발언권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 신화는 서방을 적(enemy)으로, 우크라이나를 정복 대상(conquest)으로 설정한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반대 의견이 탄압당하고, 언론은 통제되며, 사법부는 국가의 도구에 불과하다.

해외에서는 모스크바가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 사이버 공격(cyberattacks), 선거 개입(electoral interference), 유럽 사회 내 불화를 조장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교란을 시도한다.

 

러시아 사회는 점점 군사화되고 있고, 그 경제도 전쟁 지향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정권은 단지 위협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을 통해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억지로 억눌러질 수 있는 현상 유지 세력(status quo power)의 행태가 아니다.

이는 지속적인 대결(permanent confrontation)을 통해 생존하려는 독재 체제(autocracy)의 논리다.

 

여기서 전략적 딜레마의 핵심이 드러난다.

크렘린의 생존이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서방의 자제(restraint)는 신중함이 아닌 약함으로 간주된다.

양보는 격려로, 휴식은 재정비와 재무장의 기회로 해석된다.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및 돈바스 전쟁, 2022년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전쟁—모두 같은 논리를 따른다. 서방의 반응을 시험하고, 그 비용이 감당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번 크렘린은 ‘서방은 분열돼 있고, 주저하며, 저항의 대가를 치를 의지가 없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의 대가는 언제나 더 크다.

초기의 파시즘을 제때 제어하지 못해 더 큰 전쟁으로 치달았던 것처럼, 푸틴의 러시아에 대한 결단을 미루는 것도 더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도 러시아의 파괴공작팀들은 유럽 여러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러시아 해커들은 주요 인프라를 공격하고, 정보기관은 민주주의 연합을 약화시키려는 정치 세력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것은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이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광범위한 영토를 러시아에 넘기는 식의 타협을 강요당한다면, 그것은 러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 독재국들에게 ‘무력은 통한다’는 메시지를 줄 것이다.

그리고 서방은 스스로 선언한 원칙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증거로 남게 된다.

 

현행 전략—억지와 봉쇄 중심—은 러시아에 실질적 대가를 부과하긴 했지만,

크렘린의 근본적인 노선을 바꾸지는 못했다.

제재는 중요하지만, 애초에 억제가 목적이지 강제(coercion)가 목적은 아니었기에, 정권의 회복력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은 방어선 유지를 가능케 했으나, 주도권을 되찾지는 못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략적 전환(strategic shift)이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침략을 가능케 한 체제를 약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러시아 내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나 무모한 격화(escalation)를 의미하지 않는다.

크렘린을 불안정화하는 일은 직접적인 충돌이 아닌, 계획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푸틴 권력의 기반을 침식시키는 노력이어야 한다.


이는 반체제 인물과 시민사회(civil society)에 대한 지원을 도덕적 제스처가 아닌 전략적 필수사항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크렘린의 전쟁 서사를 거부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확산시키고, 그들이 생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정권을 유지하는 부패와 폭력성을 러시아 대중과 세계 사회에 폭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럽은 경제적 압박을 확대해야 한다.

더 광범위한 제재뿐만 아니라, 보다 정교하고 공격적인 집행이 필요하다.

허점을 막고, 공모자를 처벌하며,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는 그림자 네트워크를 파괴해야 한다.

러시아 엘리트들의 자산은 단순히 동결될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재건에 활용되어야 하며, 푸틴에 대한 충성의 대가가 영구적이며 개인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유럽은 러시아의 유능한 인재들을 유치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과학자, 기업가, 관료가 정권을 떠날수록, 크렘린 체제의 톱니바퀴 하나가 줄어드는 셈이다.

더 대담한 전략은 하이브리드 전쟁의 도구를 되돌려 크렘린에 맞서 활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러시아가 우리 정치 시스템에 개입해왔다면, 우리도 러시아 내 정보공간에서 맞대응해야 한다.

이는 선전이 아니라 진실의 문제다.

러시아 국민이 전쟁, 크렘린, 대안에 대한 왜곡 없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서방은 너무 오랫동안 이 영역에서 소극적이었다.

더 억압을 자극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틴 체제에서 억압은 이미 일상이다.

침묵은 그것을 방조할 뿐이다.

 

동시에 유럽은 대서양 동맹(transatlantic alliance)의 약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손을 떼려는 움직임 속에서, 유럽 각국은 더 이상 방어를 외주화할 수 없다.

따라서 러시아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은 점점 유럽의 어깨로 옮겨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부담이 아니라, 기회이기도 하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은 워싱턴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의 전략적 이익과 역사적 기억에 기반한 독자적 안보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그 역사적 기억은 우리에게 말한다.

평화는 ‘좋은 결과를 바라는 희망’이 아니라, ‘최악을 준비하는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푸틴 체제를 불안정화하는 것은 혼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명확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유럽의 안정을 위한 유일한 길은 전쟁을 유럽에 다시 가져온 바로 그 체제를 약화시키는 데 있다.

푸틴 없는 러시아가 평화를 보장하진 않지만,
푸틴이 있는 러시아는 확실히 위험을 지속시킨다.
과거 세대가 파시즘을 단순히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꺾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무장하고 회개하지 않는 독재체제를 그 뿌리에서부터 저지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유럽은 너무 오랫동안 러시아의 불안정성을 두려워해왔다.
이제는 푸틴 치하의 러시아 ‘안정’이 초래할 결과를 두려워할 때이다.
시간은 늦었지만, 아직 잃은 것은 아니다.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과거를 해체할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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