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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잘 죽기 위해 사는 삶, 완화의학(palliative care)

카페블루 2025. 6. 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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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기 위해 사는 삶 (Living to Die Well)

2025년 6월 1일

사진 출처: Alvin Ng

저자: 수니타 푸리(Sunita Puri)

검은색과 흰색의 사진 속, 한 남자의 실루엣이 바다 위로 솟아오르고 있다. 그의 몸통 중심에는 하얀 원이 빛나고 있다.

저자는 완화의학(palliative care) 전문의다.

내 환자는 무표정하고 사색적인 사람이었는데, 지난 1년간 직장생활을 버텨낸 것은 자신과 아내가 은퇴 직후에 떠나기로 한 유럽 크루즈 여행을 꿈꾸며서였다고 말했다.
“저는 이제 제 할 일을 다 마쳤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속삭였다. “이제 인생의 가장 좋은 부분이 드디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는 좀처럼 휴가를 쓰지 않았고, 퇴직 직전 몇 달 동안 더욱 심해진 메스꺼움과 간헐적인 복통을 참아가며 일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유는 이제 곧 닿을 수 있는 종착점 너머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위암(stomach cancer) 진단을 받고 그것이 간과 폐로까지 전이되자, 그는 걸을 수도, 배를 탈 수도 없을 정도로 숨이 가쁘고 구토가 심하며, 스스로 옷을 입을 힘조차 없어졌다.

꿈꾸던 삶을 사는 대신, 그는 죽음을 살아내고 있었다.

 

나는 최근에 “죽음을 향한 섹스(Dying for Sex)”라는 TV 시리즈를 보고 그 환자가 떠올랐다.

이 드라마에서는 몰리(Molly)라는 여성이 불치의 유방암(breast cancer) 진단을 받는다.

죽음을 인지하게 된 몰리는 남편과 이혼하고 호스피스 치료(hospice care)를 받으며 죽기 전에 성적 충족을 얻기로 결심한다.

 

실제 이야기를 느슨하게 바탕으로 한 이 드라마는, 죽음이라는 현실이 어떻게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삶의 방식을 명확하게 비춰주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또 다른 사실도 밝혀준다. 우리 대부분은 죽음이 ‘확실하고 임박한 것’이 될 때까지 진정으로 충만하고 진실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그것은 고속도로 위를 무모하게 질주하고, 우리의 몸속에서 은밀하게 피어오른다.

우리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이러한 구체적인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공포스러울 수 있지만, 나는 죽음 속에서 독특한 장엄함도 발견했다. 그것은 곧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다.

 

대중문화는 우리에게 진부한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믿게 만든다.

버킷리스트는 질병의 신체적 한계나 감정의 상식적 제약을 무시한 과도한 행동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은 말기 폐암 환자임에도 스카이다이빙을 한다.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에서 퀸 라티파는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고 전 재산을 인출하여 유럽으로 떠난다.

 

죽음을 맞으며 아찔한 모험을 꿈꾸거나 새롭게 자유로운 인격을 채택하는 것은, 마지막이라는 미지의 공포에 대한 유혹적인 위안이다. 그러나 내 경험에 따르면, 죽음에 대해 신중히 성찰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새로운 행위보다 복잡하고 진지한 ‘일상의 다른 버전’으로 향한다.

 

나는 종종 비슷한 소망들을 들었다. 어떤 딸은 병원에서 작게나마 결혼식을 열고, 임종이 가까운 부모가 참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했다. 어떤 형은 오래 연락이 끊긴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작별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드물게는 알라모(Alamo)에 가고 싶다는 오랜 여행의 꿈, 로맨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 마지막으로 강아지를 한 배 더 낳고 그들의 우유 냄새 나는 어린 털을 다시 맡아보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 소망들의 본질은 모두 같다.

‘현재의 삶’과 ‘바라던 삶’ 사이의 간극을 화해시키고자 하는 욕망이다.

죽음을 사유하는 일은 때때로 우리 자신과 깊은 정직함 속에 이르게 하고, 더욱 충만하게 살아가도록 돕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 몸을 더 잘 이해하고 인식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죽음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몸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죽어 육체의 비참함을 피하게 될까?

아니면 치매(dementia)가 우리의 몸과 정신을 불확실한 순서로 앗아갈까?

 

몰리는 우리 대부분처럼,

 

자신의 몸을 무덤(tomb)인 동시에 초월(transcendence)의 문으로 경험한다.

그녀는 방사선 치료 중, 녹색 빛이 두려움에 떨리는 눈에 비추일 때 몸이 침대에 고정된 채로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녀는 타인과의 첫 오르가즘을 경험할 때, 눈꺼풀이 떨리고 뺨이 붉게 피어난다.

질병이 그녀의 몸에 물리적 한계를 부여했지만, 완전히 구속하진 못했다.

그러나 내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다.

 

몰리는 여전히 욕망으로 불타오르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이루게 돕는 지지체계가 있다.

하지만 내 환자는 평생 다이어트를 하며 노년에 실컷 먹으려 했지만, 식도암(esophageal cancer)으로 인해 식욕을 잃고 삼키지도 못해 위관 영양에 의존해야 했다.

 

어떤 여성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고국으로 가고 싶어 했지만, 루게릭병(A.L.S.)으로 몸이 굳어져 결국 떠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들에게 있어 쾌락과 충족을 ‘미정의 미래’로 미뤘다는 것은, 죽음이 닥치기 전 자신이 그리던 삶의 중요한 일부를 영원히 포기한 셈이었다.

 

우리 몸은 삶을 흡수한다.

공포도, 기쁨도 피부 속에 산다.

 

몰리는 어린 시절 겪은 학대를 마주하기 시작한다. 내 환자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트라우마와, 아내와의 다정했던 관계를 잃은 것에 대해 자주 울기 시작했다. 죽음은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였던 것들 — 도전하지도, 의문을 품지도 않았던 삶의 형성적 사건들 — 을 마주할 기회를 준다. 우리는 그것들을 단지 시끄러운 룸메이트처럼 받아들이고 적응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하나의 지침(guide)으로 새롭게 개념화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삶의 의미에 대해 지속적인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지난 6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해 보라.

무엇과 누가 당신에게 기쁨과 충족을 주었는가?

무엇을 다르게 했을 텐가?

만약 그것이 당신 삶의 마지막 6개월이었다면, 당신의 후회는 무엇이었겠는가?

 

이 질문들은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죽음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다.

우리의 답은 삶이 흘러가며 변화한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과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질문들을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시작한다면, 우리는 살아온 만큼 충만하게 죽을 수도 있다.

 

물론 우리의 남은 삶을 과거에 억눌렀던 욕망에 따라 재배열하는 것이 항상 현실적이거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그러나 만약 잠자던 열망을 따라 삶을 뒤엎을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몸이 주는 삶 속에서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슬픔의 불꽃과 기쁨의 맥박, 포옹의 강도와 버터 바른 토스트의 맛에 집중하는 삶 말이다.

죽음 속에서도, 우리의 몸은 병에 의한 단순한 쇠퇴 이상의 가능성을 지닌다.

 

내가 처음 만났던, 유럽 여행을 꿈꾸던 환자를 몇 달 뒤 다시 보았을 때, 그의 아내는 그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왔다.

그녀는 그의 피부가 하룻밤 사이에 노랗게 변했고, 병원에 가기를 강하게 거부했던 그의 목소리와, 간병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딸의 결정을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내가 병상 옆 의자에 앉자 그는 미소 지었다.

“벨기에를 정말 보고 싶었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정말 좋은 초콜릿을 당께 하나 가져다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수니타 푸리(Sunita Puri)는 《그 좋은 밤: 생과 사의 마지막 시점에서의 삶과 의학(That Good Night: Life and Medicine in the Eleventh Hour)》의 저자이며,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의 의대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완화의료 상담 서비스(palliative care consultation service)를 이끌고 있다.

 

덧붙이는 말:

완화의학(Palliative Care) 간단 정의

치료가 어려운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통증이나 불안, 숨참, 우울 등의 증상을 덜어주고,
마지막까지 dignified(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의학 분야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받나요?

  • 암, 심부전, 만성 폐질환, 치매, 루게릭병 등
    완치가 어렵거나 진행성 질환이 있을 때
  •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뿐 아니라,
    진단 초기부터 병과 함께 살아가는 전 과정에서도 받을 수 있어요.

완화의학이 하는 일

분야설명
신체적 고통 관리 통증, 구토, 숨참, 피로 등 증상 완화
정신적·감정적 지지 불안, 우울,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상담
가족 지원 간병하는 가족의 스트레스와 슬픔까지 함께 돌봄
의사결정 도움 연명치료 여부 등 중요한 결정에 도움
삶의 의미와 존엄 추구 마지막까지 나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동행
완화의학 vs 호스피스
  • 공통점: 삶의 질 향상이 목표
  • 차이점:
    • 완화의학은 병의 진행 초기에 시작 가능
    • 호스피스(Hospice care)는 말기(보통 6개월 미만)에 집중

한 줄 요약

병을 고치는 건 아니지만,

아픈 사람의 고통을 덜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의학이에요.

수니타 푸리 박사처럼, 완화의학 전문의는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어떻게 더 잘 살고 잘 떠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는 의사랍니다.

 

한국에도 완화의학(palliative care)은 분명히 존재하며,
완화의학 전문의완화의료 전문 병동도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암, 말기 질환, 치매, 심부전, 루게릭병 등에서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기 위한 돌봄이 실제로 제공되고 있어요.

한국의 완화의학 개요

  •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 도입
  • 보건복지부 주도하에 호스피스·완화의료 시범사업 시작
  • 현재는 완화의료전문기관 인증제도까지 운영 중
  • 암 환자를 중심으로, 이제는 비암성 말기 질환자까지 확대

완화의료(호스피스 포함) 제공 병원

다음은 완화의학과 또는 완화의료병동이 있는 대표적인 병원들입니다:

1. 서울대학교병원

  • 완화의학과 운영 중
  • 통증관리, 삶의 질 향상, 가족 상담 등 전문팀 활동
  • 서울대병원 암센터와 연계

2. 삼성서울병원

  • ‘완화의료클리닉’ 운영
  • 진단 초기부터 말기까지 돌봄 가능
  • 암뿐 아니라 다양한 만성질환 포함

3. 국립암센터 (일산)

  • 완화의료센터 별도 운영
  • 입원형, 가정형, 외래형 완화의료 제공
  • 암환자 대상 전국적 모델 역할

4. 서울성모병원, 연세세브란스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 통증클리닉 또는 완화의료팀으로 운영
  • 대부분 암센터와 통합적으로 연계됨

완화의학 전문의

  • 2010년대부터 정식 전문과목으로 인정
  • 대부분 가정의학과, 내과, 마취통증의학과 출신 의사들이 추가 전문과정 이수
  •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상담사 등이 함께 팀으로 돌봄을 수행

병원 이용 팁

호스피스는 가톨릭병원에 많나요?

네, 맞습니다.
가톨릭계 병원(예: 성바오로병원, 성모병원, 성가롤로병원)은 오래전부터
‘존엄한 죽음’과 ‘삶의 돌봄’에 중점을 두어 호스피스·완화의료에 선도적이었습니다.

 

추가 정보-전국 완화의료전문기관 찾아보기

  • 보건복지부에서는 전국의 완화의료전문기관을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 국가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 정보포털(hospice.go.kr)에서 지역별 완화의료기관을 검색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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